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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01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01
비교과통합센터2014-02-05

벤야민 사상의 현재성

강사명: 최성만

 독일의 유대계 지식인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20세기 전반부에 활동한 사상가, 이론가, 비평가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 재 발굴되고 본격적으로 수용된 것은 60년대 학생운동이 전개될 무렵부터이다. 벤야민은 아도르노가 특징지었듯이 비범한 사변적 능력과 고도의 문학적 특질이 결합된 문체를 구사하는 글들을 썼다. 스스로 “좌파 아웃사이더”로 이해하고 자유기고가로 활동한 그는 특히 초기의 형이상학 및 신학과 후기의 유물론적 정치학을 독특하게 아우르는 사상을 펼쳤다. 오늘날에도 미학, 철학, 언어학,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 문화연구, 매체이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분과학문의 벽을 넘어 풍부한 모티프를 제공하는 사상가로 주목받으면서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총 18개의 테제와 두 개의 추기로 이루어져 있는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벤야민이 남긴 최후의 글이자 그의 역사철학적 사유 전체가 응축된 글이다. 그러나 그가 사망한 1940년 초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 이 에세이와 관련하여 쓴 노트와 메모에는 최종적으로 완결된 텍스트에 반영되지 않은 중요한 성찰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1942년 처음 출간될 때 「역사철학테제」라는 제목이 달린 이 글은 당시 파시즘에 의해 파괴될 위기에 처한 인간의 생명과 문화에 대한 성찰뿐만 아니라 역사주의와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 유대신학과 유물론적 정치의 연관에 대한 성찰을 아우르고 있다. 특히 신학과 정치의 모티프는 오늘날 서구의 이론가들에 의해 조명을 받으면서 벤야민 사상의 현재성이 다시 입증되고 있다(조르조 아감벤, 슬라보예 지젝, 자크 랑시에르, 테리 이글턴 등).
 벤야민의 평생의 친구 게르숌 숄렘은 이 테제들이 “히틀러-스탈린 밀약의 충격에서 깨어남”을 표현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테제들은 정치적 상황에 대한 반응을 넘어 그가 평생 추구해온 인식론을 집약한 글이다. 또한 후기 『파사주』 작업의 인식론적 토대를 이루는 성찰들을 모은 노트묶음 K와 N은 이 에세이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역사인식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언급하면서 ‘꿈과 깨어나기’의 변증법을 설명하는 다음의 노트는 이 테제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이러하다. 즉 지금까지는 ‘과거에 존재했던 것’을 고정점으로 보고 현재는 더듬거리며 인식을 이러한 고정점 쪽으로 끌어오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 이러한 관계가 역전됨으로써 과거에 존재했던 것은 깨어나기가 그것과 대립된 꿈의 이미지들을 두고 수행하는 종합으로부터 변증법적으로 고착되어야 한다. 정치가 역사에 대해 우위를 차지한다. 게다가 역사적 ‘사실들’은 방금 우리에게 부닥쳐오는 것이 된다. 그 사실들을 확인하는 것이 기억이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깨어나기는 기억의 전범적인 경우이다.”(『파사주』 프로젝트, ho2, 또한 K 1, 1도 참조)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서의 이러한 전환에 따르면 사람들이 과거를 더는 고정점으로 보지 않고 현재로부터 관찰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역사는 “구성의 대상이며, 이때 구성의 장소는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시간(Jetztzeit)으로 충만된 시간”이 된다(14번째 테제). 그에 따라 과거는 역사적 관심의 대상인 것만이 아니라 정치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정치가 역사에 우선하게 된다. 이러한 사고는 이미 벤야민 초기의 정치철학에서 표명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이 때 정치는 신학과 대립적이면서 은밀하게 연결된 관계 속에 등장한다. 실제로 신학과 정치의 관계는 벤야민 사상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다. 벤야민이 말하는 신학은 신에 관한 사유를 의미하기는 하지만 단순히 신학이라는 학문과 제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우선 2번 테제에서 바로 이 ‘신학’이 갖는 함의가 드러난다.

?기억, 행복, 구원에 대한 사유

? 벤야민에게서 ‘세속적 질서’를 지향하는 정치가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행복’이다. 그런데 이 ‘행복’에 대한 표상은 벤야민이 2번 테제에서 말하듯이 과거에서 형성된다. 그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과 약속, 하지만 아직도 그 실현가능성이 열려 있는 소망과 약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벤야민은 행복의 관념에 ‘구원’의 관념이 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실패와 불행의 과거를 기억하는 기억과 회상의 모티프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벤야민은 이 2번 테제와 유사한 성찰을 『파사주』 프로젝트 노트묶음 N에서 전개하는데, 여기서 기억, 행복, 구원에 대한 그의 신학적 사유가 어떤 매개를 통해 정치적 실천과 연계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생각해 볼만한 말. ‘인간의 심성이 지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 중에는 …… 세세한 것에서 보이는 수많은 이기심 이외에도 어떤 현재든 일반적으로 미래에 대해 아무런 부러움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속한다.’ 이처럼 아무런 부러움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품고 있는 행복의 관념이 우리가 살았던 삶의 시간으로 깊이 채색되어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우리는 우리가 호흡해온 공기 속에서만,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 속에서만 행복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행복의 관념 속에는 ― 이것이 위의 희한한 정황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인데 ― 구원(Erlosung)의 관념이 공명하고 있다. 이러한 행복은 암담함과 고독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것들은 바로 우리 자신의 암담함과 고독이었다. 즉 우리의 삶은 역사적 시간 전체를 응축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근육이다. 또는 다시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적 시간에 대한 진정한 개념은 철저하게 구원의 이미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인용은 헤르만 로체, 『소우주』, III, 라이프치히, 1864, p.49.)”(『파사주』 프로젝트, N 13a, 1)
 이 노트에서 정치와 신학의 매개를 이루는 것은 ‘암담함과 고독’이다. 2번 테제에서는 실현되지 않은 과거의 가능성과 소망으로 표현되고 있다. 2번 테제에서 벤야민이 세대들 사이의 “약속”과 “요구”,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희미한(= 미약한) 메시아적 힘”을 통한 ‘구원’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시간의 종말에 이루어질 구원사적인 복구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변제(辨濟)되지 못한 과거의 요구들, 지나간 세대들의 희생과 패배와 절망 등을 현재에 정치적으로 변제, 이행, 성취해야 한다는 과제와 그 과제를 이룰 힘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가 행복을 우리 자신의 생애와 연관해서만 표상할 수 있다면 다른 한편 우리가 놓친 것, 실패한 것들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 집단의 차원에서 생각하게끔 한다. 즉 이러한 실패와 ‘고독과 암울함’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지난 세대들과 연대감을 느낀다. 그 과거가 현재에 요구하는 ‘희미한 메시아적 힘’은 정치적 실천을 위한 주체의 힘으로서 이미 모든 세대마다 주어져 있다. 그 힘은 종교적 초월이 아닌 세속적 역사의 내재적 변화(정치)를 위한 힘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인식과 실천을 수행할 주체는 추상적인 휴머니즘적 ‘인류’가 아니라 “투쟁하는, 억압받는 계급 자신이다. 마르크스에서 그 계급은 해방의 과업을 과거에 때려눕혀진 자들의 세대들 이름으로 완수하는, 최후의 억압받고 복수하는 계급으로 등장한다.”(12번 테제)

?기억의 대상으로서의 역사

?역사에 관한 벤야민의 테제들은 한 마디로 역사를 과학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대신 기억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요구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역사관에서 기억, 신학, 정치(행복)은 긴밀하게 연결되는 요소들로 서로 호응한다. 이 맥락에서 진보의 신앙에 대한 비판, 역사에 대한 전통적 시각이 습관적으로 상정하는 물화된 ‘서사적 연속성’에 대한 비판, 역사를 완결되지 않고 불연속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는 것을 진정한 역사가의 과제로 보는 역사관 등이 어우러지면서 벤야민 역사철학의 중추를 형성한다.
 벤야민에게서 진정한 역사 인식은 인식하는 자의 현재가 특정한 과거와 만나 이루는 성좌구조(Konstellation)의 이미지, 그가 말하는 ‘정지 상태의 변증법’으로서만 가능하다. 짐짓 객관성을 표방하는 역사주의가 주장하듯이 주체가 소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의 역할이 핵심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나치에 쫓겨 48세로 생을 마감한 벤야민은 특히 후기에 경제적 곤궁과 정치적 압박 속에서 시련에 가득 찬 삶은 살았다. 그럼에도 그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지식인으로서 치열하게 성찰했고, 명랑성을 잃지 않았으며, 그 명랑성과 긍정성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산문들을 남겼다.
  최성만 교수(이화여자대학교 독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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