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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드레스 코드는 정서법
53. 드레스 코드는 정서법
비교과통합센터2013-06-03

후마니타스 장학생 선발대회가 끝났다. 독서논술과 독서토론의 한마당에 참여한 지난 일주일, 나는 행복의 저편(『행복의 정복』, 『선악의 저편』)을 왕래했다. 해마다 이 행사가 시작될 무렵, 나는 기대한다. 좀 더 치열한 문제의식이 창의적인 해석과 만나 나를 헉! 하게 하기를…….

▲ 드레스 코드는 정서법

토요일 오후, 학내 모처의 지하실에 교직원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후마니타스 독서논술답안지 채점을 위한 심사의 무한도전이 시작되려는 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논술답안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 자정을 넘기지 않고 심사가 끝나길 바라는 마음과 문제적 답안을 만나고 싶은 기대가 교차한다. 이 대회의 결과는 우리 학문공동체의 일면일 것이라는 생각에 고갈되는 체력을 커피의 무한리필로 달랜다.

대부분의 글들이 적절한 근거와 인용구를 양념처럼 넣어 형식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었다. 문제는 정서법. ‘언어를 표기하는 규칙’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어쩌면 정서법은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글의 드레스 코드(dress cord)가 있다면 정서법이라고 나는 말할 것이다. ‘어떤 모임의 목적, 시간, 만나는 사람 등에 따라 갖추어야 할 옷차림새’처럼 규칙에 맞지 않은 글은 수상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정서법의 유무는 구직자의 간절함도 가린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최악의 자기소개서 유형으로 ‘맞춤법, 띄어쓰기가 엉망인 글’(한겨레신문 2012년 8월 15일자, ‘자기소개서에서 자주 틀리는 맞춤법 뭐가 있지?)을 꼽았다. 그런데 논술답안 심사를 하던 내가 무심코 교정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정서법에 신경을 쓰다 보니 직업병(?)이 도진 거다. 원대신문 지난 호(3월 18일자)에 투고된 학생글에서 지적했듯이 ‘용돈벌이의 수단’으로 쓴 글에서 정서법에 맞는 글 찾기란 어쩌면 무모한 도전인지도 모른다.

▲ 글의 진행은 돛단배처럼

독서논술의 주요 평가 요소는 첫째 이해력이다. 제시된 논제와 텍스트를 올바르게 분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해력이 부족한 글은 논제의 변죽만 건드린다. 치밀한 읽기로 키워드를 발견하자. 글쓰기는 (텍스트를) 줄여서 (사고와 표현으로) 늘리는 작업이다.

둘째 논리적 사고력이다. 주제의 선명성과 논증방식의 합리성, 논거 제시의 적합성, 논리의 일관성 확보는 사고력의 정도에 달렸다. 글을 전개할 때는 징검다리를 놓듯이 논지를 체계적으로 배열하여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셋째 창의성이다. 답안 작성자들은 출제자가 제시한 데로 끌려가는 경우가 많다. 시대적 문제로 확장 가능성이 있는 논지를 선택하자.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부분. 문제의 파악, 사실의 이해, 해결 능력이 필요하다. 제제를 적절히 활용하여 참신하고 독창적인 예시와 논거를 제시해야 한다.

넷째 표현력이다. 적합한 용어와 정서법이 그것이다. 무리한 인용으로 글의 흐름을 끊거나, 논지를 다른 쪽으로 흘러가게 해선 안 된다. 글은 결론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돛단배처럼 흘러가야 한다.

다음 후마니타스 대회는 개성 있는 주제를 돛대 삼아 경연을 펼치는 요트 대회가 되길 바란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우리 함께 흘러가자, 원광의 바다로.

박태건 (글쓰기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