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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응답하라 3927
74. 응답하라 3927
비교과통합센터2014-01-08

 

응답하라 3927

 

 

TV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를 즐겨본다. 청춘남녀의 알콩달콩한 연애담이 펼쳐지는 하숙집은 낭만이 살아 있던 ‘캠퍼스의 그때’를 추억한다. ‘응사’는 낭만적 소통의 시대적 오마쥬인 것. 이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자본주의적 경쟁사회에서 의사소통은 자기중심적 경향을 띤다. 때론 목적 달성을 위해 상대를 인정하는 척하기도 한다. 의사소통이 수단화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소통은 포즈에 불과하다.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은 상대를 반응도 이해한다는 것. 이해는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가치를 발견하려는 태도에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응·사는 페이스 북의 ‘좋아요’ 수준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가 찾아야 할 응답은 현실사회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끝에 나오는 것이기에 행동을 수반해야 한다.

 물음과 행동의 역동적인 소통의 시작은 세상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관심은 소통 지향의 글을 쓰려는 사람이 지녀야 할 삶의 태도다. 독자는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보인다. 그런데 아이처럼 금방 싫증을 내는 경향이 있다. 호기심의 유효기간이 짧기 때문. ‘글을 단문으로 써라’, ‘중복어는 지워라’ 등의 글쓰기 방법은 독자의 관심을 유지시키기 위함이다. 문제는 관심만 유발시키고 끝내는 글쓰기다.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다. 글쓰기 초심자가 ‘꼭 해야 할 말인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말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결과다. 분별력이 부족하니 불필요한 문장을 줄이지도 못한다. 글쓰기의 자의식은 내 마음의 관심의 지향을 아는 데서 만들어 진다. 자의식이 분명한 글쓰기는 대상을 보는 태도도 분명하다. 내면의 눈으로 대상을 볼 때, 글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갖는다.

 

글쓰기는 치열한 관찰로 구성된다. 관찰이란 지속적으로 갖는 관심이다. 우리는 관찰을 통해 다른 대상과의 다름을 발견한다. 다름이란 대상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이 특징이 글의 얼개를 만든다. 키워드로 생각의 뜨개질을 하는 것. 관찰이 충실할수록 촘촘한 올을 가진 옷이 만들어진다. 관찰의 방법으로 ‘소개팅 방식’을 추천한다. 처음 만난 상대에게 궁금한 점을 묻듯이 질문에 호응하는 답변으로 글을 쓰는 방식이다. 글쓰기는 대상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놀이다. 대상에게 궁금증이 있어야 경청을 통한 관찰이 가능하다.

글쓰기의 목적은 소통이다. 독자의 욕구에 필자가 응답하고, 필자의 주장에 독자가 응답할 때 소통이 이루어진다. 소통이 원활하기 위해선 글의 구성력과 전달력이 필요하다. 가상의 독자를 구체적으로 상상할수록 소통의 효과는 높다. 허공에 소리치는 것보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에게 말을 건네느냐에 따라 ‘어떻게’가 결정되는 것이다.

 

제목에서 언급한 ‘3927’은 전국의 70만 수험생중 우리 학교가 초대한 신입생의 수다. 봄이 돌아오면, 우리의 초대에 응답한 3927명과 소통의 파티가 시작될 것이다. 이 파티는 자신의 내면을 먼저 들여다보고 학문공동체의 일원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강의실과, 캠퍼스의 잔디밭 위에서 펼쳐질 것이다. 소통 파티의 참가자들이 관심과 관찰의 습관을 길러 자신의 파트너를 신중하게 정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소통의 파티로 온 나라가 뜨겁게 달아올랐으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 현실사회가 던진 문제에 저마다의 응답을 준비하는 이 계절이 치열하다. 이 치열한 질문의 끝에 봄은 온다.

 

박태건 (글쓰기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