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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지표를 돌탑처럼 세워라
86. 지표를 돌탑처럼 세워라
비교과통합센터2014-12-23

 

지표를 돌탑처럼 세워라

 

지표를 돌탑처럼 세워라.


 


개강을 앞둔 캠퍼스의 전광판에 정부지원사업의 선정 결과가 화려하게 게시된다. 명문대로 갈 발판을 마련한 것만 같아 괜히 들뜬다. 그러나 국가의 GDP의 상승이 일상생활에서 실감나지 않듯, 전광판의 문구가 학교 지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와 닿지 않는다. 지표는 방향이나 목적, 기준 따위를 나타내는 표지다. 하나의 지표는 추론을 거쳐 주장의 근거가 된다. ‘지금 여기’의 지표를 논리적 구조로 파악한다면 미래는 선명해진다.

현상은 지표에 의해 구체화된다. 그런데 지표는 숫자의 나열인 경우가 많아 의미파악이 어렵다. 초보자는 해당 지표들이 어떤 기준으로 연결되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이런 지표를 하나의 의미로 만드는 작업이다. 성공한 글쓰기는 한 사회의 합의로 이끌어내어 상식으로 만든다. 지표의 커다란 묶음이 사회적 의미가 된 경우다.

지표는 글쓴이의 필요에 의해 해석된다.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들을 별자리로 의미부여한 것도 방향을 알기 위한 고대인들이 필요에 의한 것이다. 요즘은 지표에 접근하는 방법도 많고 정보의 양도 많아서 해석이 관건이 된다. 강가의 돌멩이들을 욕심껏 모아 놓았는데 돌다리를 놓을지 돌탑을 쌓을지 모른다면 돌무더기만 만든 꼴이다. 그래서 시간에 쫓겨 글을 쓰면 ‘정보는 있으되 생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는 의미 없어 보이는 돌멩이들을 맥락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돌탑으로 만드는 일이다. 칸트는 지표로 모으는 힘을 ‘생산적 상상력’이라 칭한다. 생산적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다. 강가의 돌멩이도 각각의 사연이 있다. 사실 존재는 처음부터 말하고 있다. 문제는 지표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 ‘생산적 상상력’이 생기면 고요함에서 움직임을 발견하고, 움직임에서 고요함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의 돌탑들이 잘 무너지지 않는 것도 당대의 지표들의 무게와 균형을 고려한 장인의 상상력이다.

단단한 돌탑은 ‘논리 피라미드’라 부르는 수직 논리로 쌓여 있다. 이 구조는 앞문장과 연결된 뒷문장을 ‘왜, 어떻게, 어떤 점에서’의 연속된 질의응답 형식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 선정액이 얼마’라든가 ‘호남 제주권에서 몇 위다’라든가 하는 진술 뒤에 ‘왜’에 해당하는 지표를 근거로 제시한다. 그 다음엔 ‘어떤 점’에서 이 수치가 의미가 있는지 밝히고, ‘어떻게’ 선정되었는지 이야기를 차례로 쌓아 올리면 된다. 수직논리 구조는 가장 아래의 받침돌(주장)의 상상력이 쌓아올린 지표들과 맞물려 튼튼해진다.

맥락의 연결은 강가의 돌멩이에 불과한 지표들을 하나의 돌탑으로 쌓아 의미를 갖게 한다. 이렇게 쌓은 돌탑을 단락이라고 하자. 이런 단락과 단락들은 논리의 회랑과 연결되어 ‘언어의 사원’을 만든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자신만의 연결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돌탑에서 시대의 양식을 읽어 내듯 글쟁이는 당대의 지표에 자신의 스타일로 하나의 양식을 창조한다.

지표는 고유명사도 각종 지표를 맥락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보통명사로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지표가 ‘움직이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이 ‘움직이는 서사’는 관계의 상상력으로 쌓이는, 돌탑을 쌓듯이 이어가는 질의응답식의 구조는 기초가 되는 주장으로 향하는 힘을 갖는다. 돌탑이 한 층씩 서로의 무게와 균형을 유지하며 견고해지듯, 앞 문장은 뒷 문장에 대한 질문을, 뒷문장은 앞문장의 이유를 감추고 있어야 한다. 가독성이 좋은 글은 ‘왜’가 거듭된다.

 

박태건 (글쓰기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