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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받으십시요
84.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받으십시요
비교과통합센터2014-06-03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받으십시요

 

 지난 호에서 살펴본 ‘-오’, ‘-요’(주십시오O, 주십시요X)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려 한다. 어떤 군인이 새해에 포상 휴가를 나왔단다. 설날 부모님께 자식들이 차례로 인사를 드린다. 그런데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병사에게는 ‘받으십시오’가 ‘받으십시요’로 들렸던 것이다. 순간 병사는 당황하게 되었다. 군대에서는 말을 할 때 ‘-요’로 끝맺지 말고, ‘-다’나 ‘-까’로 끝맺으라고 교육한다. 군기가 들 대로 든 이 병사의 새해 인사말은 무엇이었을까?

 군대에서 흔히 듣는 이상한 형태의 말이 있다. 바로 ‘-말입니다’가 덧붙는 것이다. ‘그런데요 오늘은요’가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은 말입니다’로 둔갑한다. ‘-요’로 끝맺음하면 안 되니 어쩔 수 없는 셈이다. 사회에서의 ‘-요’가 군대에서는 ‘-말입니다’인 것이다. 복학생 중에는 전역 후에도 이런 말투를 유지하기도 한다(이런 말투를 들을 때마다 군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필자도 이와 관련해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30년 전이다. 1985년 3월에 교련 선생님 앞에서 선서 지도를 받다가 혼쭐이 날 뻔했다. “어제 농구하다가 팔을 다쳐 오른손이 잘 안 올라가는데요.”라고 했다가 그 섬뜩한 눈초리에 식겁하는 줄 알았다. 중학생을 갓 벗어난 놈이라 판단하셨는지 주먹떡이란 별명의 그 무시무시한 선생님께서는 더 이상의 물리적 행위는 가하지 않으셨다. 대위로 전역하신 분이시니 당연히 ‘-다’나 ‘-까’로 끝맺길 바라셨던 것이다. “어제 농구하다가 팔을 다쳐 오른손이 잘 안 올라갑니다.”라고 했으면 큰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었다.

 우리가 평상 시 쓰는 말을 군대식 말투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군대에서는 ‘-요’를 쓰지 말라고 하니 그것이 문제인 셈이다. ‘했어요.’가 아닌 ‘했습니다.’, ‘했어요?’가 아닌 ‘했습니까?’를 사용하라는 말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명령을 하는 상황이 문제이다. 군대 밖에서 쓰는 말은 ‘이거 해요’ 혹은 ‘이거 하십시오’이다. 이를 ‘-다’, ‘-까’로 끝맺으면 어떻게 될까? 사실 ‘(이거) 해요’의 군대 말이 ‘(이거) 하십시오’이다. 그런데 ‘하십시오’를 발음하다 보면 자동적으로 ‘하십시요’와 구분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군대에서는 ‘하십시오’가 ‘-요’로 끝난 말이라고 생각하고 이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사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는 훌륭한 군대 말이다. 그런데 ‘받으십시오’가 ‘받으십시요’로 혼동되면서 금기시되는 말투가 되어 버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휴가를 나온 병사가 부모님께 건넨 인사말은 바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란 말입니다.”이다. 병사 나름대로는 ‘-요’로 끝날 것을 ‘-다’로 끝맺었으니 흐뭇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듣는 부모님은 참 황당하셨으리라 생각된다. 애처롭게 여기셔서 눈물이 쏟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군대에서 ‘-요’가 아닌 ‘-다’나 ‘-까’로 끝맺으라는 말은 ‘합쇼체’ 혹은 ‘하십시오체’를 쓰라는 말이다. ‘하십시오’가 줄어서 ‘하십쇼’가 되고 ‘하십쇼’가 줄어서 ‘합쇼’가 되는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가 줄어서 ‘어서 오십쇼’, ‘어서 옵쇼’로 바뀌는 것과 맥락이 같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는 훌륭한 합쇼체이지만 이를 ‘-요’로 발음했다고 생각하는 사람(군대 고참)이 문제이다. 그 고참을 가르치려 들면 더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 순응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수백 년 전 이맘때 갈릴레이는 종교재판 후 법정을 나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래도 ‘받으십시오’는 합쇼체인데”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임석규 교수(원광대 국어국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