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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한 사람을 위한 편지를 쓰겠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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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과통합센터2014-12-23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한 사람을 위한 편지를 쓰겠어요.
5월이 가정의 달이라면, 10월은 부조(扶助)의 달이다. 주말이면 경조사가 겹겹이 밀려있어 책상 달력이 빼곡하다.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이 민족의 미덕이라지만 거듭된 지출은 부담스럽다. 지갑을 쥐어짜도 더 나올 게 없는 나의 가난한 경제는 매번 허덕거린다. 그래도 사람 구실(?)하려면 부지런히 찾아 다녀야겠지. 집안의 대소사는 감사장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요즘엔 전자메일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는 게 대세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고맙고, 보답하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큰일을 치른 후라 일일이 마음을 쓰기 어렵겠지. 그래도 형식적인 인사를 받으면 읽는 사람도 감흥이 적다. 우리의 부조가 봉투를 건네고 한 끼 해결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은행 적금과 무엇이 다를까? 편지는 오랫동안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교였다.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것이 도리이오나’식의 천편일률적인 문장보다 마음이 담긴 짧은 글을 써보자. 사도 바울의 편지는 기독교 복음화의 한 증거였으며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는 시공을 초월한 영혼의 독백으로 여전히 빛난다.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와 시애틀의 추장이 미국 대통령에게 쓴 편지는 또 어떤가. 편지는 한 인간의 인격과 사상이 상대에게 꽂히는 화살같은 것이어서 읽는 사람의 마음도 파르르 떨리게 하지 않던가. 일상을 특별한 순간으로 만드는 마법의 편지를 쓰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깝고 먼 사람들에게 지금의 감정을 솔직하게 글로 옮겨보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일생동안 겪을 경조사는 그리 많지 않다. 글을 잘 쓰는 비결 중 하나는 연애편지를 쓰듯 글을 쓰는 것이다. 연애편지에는 글쓰기의 4가지 비법이 들어 있다. 첫째는 정확한 수신자이다. 글쓰기 초심자가 첫 문장을 어려워하는 것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기 때문이다. 연애편지처럼 상대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어투와 소재의 선정이 쉬워진다. 둘째, 주제의식이 선명하다. 특히 독자를 관여시키면 읽는 재미가 쏠쏠해진다. “오늘 결혼식을 해서 행복합니다.”라는 ‘나’ 중심의 문장을 ‘너’ 중심의 문장으로 바꿔 “결혼식 준비과정에서 당신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다.”는 식으로 써보자. 셋째, 지면이 한정적이다. 편지지의 제한성은 몰입의 촉매제가 되며, 몰입의 글쓰기는 진정성을 에너지로 ‘야생의 사고’를 깨어나게 한다. 소설가 조앤 롤링은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쪼개 <해리포터>를 썼으며, 등반가는 암벽에 매달린 몇 시간을 불과 몇 분으로 느낀다. 시스틴 성당 천장에서 15년을 매달려 <천지창조>를 그린 사람도 있다. 마지막으로 편지는 퇴고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전자메일이 보편화되면서 잘못 쓴 편지를 되찾기 위해 우체통 앞을 지켰다는 회고담은 전설이 됐다. 그러나 소통 방법이 쉬워질수록 진정한 소통이 부족해졌다고 한다. 글은 퇴고할수록 좋아진다. 정약용은 “한 통을 쓸 때마다 두 번, 세 번 읽어보고 마음속으로 빌어야 한다. 이 편지가 큰길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열어보아도 내게 죄를 주는 일이 없겠는가?(중략) 그런 다음에야 봉투를 붙여야 한다.”고 하여 퇴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좋은 글은 자신의 구태의연한 생각들과 싸우고 뒹굴며 태어난다. 그런 점에서 연애편지 쓰기는 상대에게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토로하는 고백의 글쓰기다. 연애편지를 쓰듯 고마운 분들에게 편지를 쓰자. 세상의 모든 연애는 관심에서 시작하며 관심은 ‘나’ 중심의 세계에서 ‘우리’를 발견하게 한다. ‘당신이 있어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곧 연애(戀愛) 아니던가.
박태건 (글쓰기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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