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기사를 통해 요즘 세대들이 카톡 글까지 대필할 정도로 긴 글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스낵컬처’에 익숙해진 세대이니 그런 성향을 가지게 될 것이라 조심스레 예견한 적은 있었지만 카톡 글까지 대필한다는 얘기는 그 예견을 훌쩍 뛰어넘는 행태였다.
요즘, 인터넷에서 누군가 긴 글을 올리면 꼭 달리는 댓글이 있다. “세 줄 요약 좀 해주세요.” 긴 글을 읽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긴 글을 쓸 수도 없다.
사유의 호흡이 짧으면 그것은 점점 기승전결을 잃는다. 생각은 휘발성과 변덕성이 강하기 때문에 기승전결을 오롯이 갖추기가 쉽지 않다.
일시적으로 완전한 형태를 갖췄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가물가물하기 일쑤다.
인간이 굳이 시간을 들여 ‘기록’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러한 생각의 약점 때문이었고,
늘 뭔가를 기록해온 사람들이 세상에 가치 있는 행적들을 남겼다.(물론 본인이 아닌 제자나 지인들이 남겨준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요즘 사람들이 기록을 게을리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실, 요즘만큼 기록을 열심히 하는 인류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먹는 음식, 자신이 방문한 장소 등 일일이 모든 것을 사진 찍어 남겨두는 세대이니 기록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그 누구도 나무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부지런하다.
하지만 그 기록에 늘 사유가 빠졌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모든 것이 맛있고 멋있다는 짧은 감상에 머물러있다.
감상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좋고 싫음을 나누고 재방문 의사를 표출한다든지 누군가에게 가보라고 권하는 글은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다.
즉, 내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것이 내 것이 되기 위해선 사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왜 그 음식이 특별했는지, 그 음식이 내 인생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등 조금 더 추상적인 것들을 물리적인 글로 치환하는 작업을 거치게 되면,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은 더 온전한 형태와 의미를 갖추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작업들을 꾸준히 하다 보면 모든 순간들에 기승전결이 생기고 전에는 보지 못 했던 것들까지 볼 수 있는 예민하고 디테일한 감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글쓰기를 시작해야 할까?
사람들이 긴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몰라서’다.
문단을 시작하거나 끝맺을 때는 어떤 문장을 넣어야 할지, 글의 소재는 어떻게 찾아야 할지, 문단의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할지 등 긴 글을 쓸 때는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 많아지기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즐겨 하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가 성행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긴 글에 대한 압박감을 사전에 덜어주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아예 글자 수에 제한을 둬서 긴 글에 대한 고민을 덜어주거나, 사진이나 동영상을 글보다 우선시하여 글에 투여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게 해주니 오롯이 글로 채워야 할 공간이 가득한 A4 용지나 원고지보다 더 자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시작하려면 이러한 ‘짧은 글’에 최적화된 플랫폼 대신에 긴 글을 쓸 수 있는 공간부터 찾아야 한다.
그것은 블로그나 포스트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하다못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일기장이 될 수도 있다.
흰 백지를 받아들였을 때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막연함보다 무엇을 채울지에 대한 설렘이 생길 때까지 꾸준히 무엇이든 일단 써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긴 글을 쓰는 것보다 선행 혹은 병행되어야 하는 것은 긴 글을 읽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늘 뭔가를 만들기 위해서 사전에 레퍼런스를 찾아보고 참고하듯, 글쓰기를 할 때도 레퍼런스를 학습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역시도 짧은 글이 넘치는 SNS의 타임라인이 아닌 긴 글이 가득한 온라인 플랫폼이나 도서관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 글들을 자주 읽다 보면 자연스레 긴 호흡의 글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스킬을 습득하게 되고 훗날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글을 쓰는 작업은 물론 여느 취미처럼 쉽게 시작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무엇보다 많은 사유를 요하기 때문에 때로는 운동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체력이 소모되는 느낌이 들 때까지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글쓰기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생각은 어디까지나 휘발되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머리를 쥐어짜 내 글 하나를 여러 문단에 걸쳐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을 경험해본 이라면 그다음 글을 완성시킬 수 있는 동기를 얻게 되고 그것이 계속 습관화되면 글쓰기는 필경 사진을 찍는 것보다 더 익숙한 기록 장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해서 쓰다 보면 자신만의 노하우를 체득할 수 있어서 글쓰기의 양질은 점점 훌륭해진다.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876290&memberNo=753164&clipNo=8&searchRank=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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