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나서 제일 신경 쓰였던 것 중에 하나가 음식이었다.
결혼 전 음식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치우는 것은 좋아하는데 음식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너 그렇게 해서 어떻게 시집갈래?”라고 말하곤 했다.
“음식 잘하는 남자 만나야지 뭐!”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막상 결혼날짜가 다가오니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직장생활로 인해 제대로 살림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배울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조급한 마음에 요리책을 사서 그나마 쉬워 보이는 음식으로 하나씩 해보기 시작했다.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소한 이름도 많고 재료도 하나씩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양념이나 소스도 낯선 이름이 많이 나와 도무지 요리책을 보고는 쉽게 되지 않았다. 구입한 요리책이 2권, 3권이 되어갔지만 마땅히 쉽게 할 수 있는 게 나오질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엄마는 요리책을 보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소스를 넣는 것도 아닌데 맛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아하, 바로 이거구나.’
그 순간 나에게 딱 맞는 것을 찾게 되었다. 바로 엄마의 손맛을 훔치는 것이었다. 무엇으로? 글로 말이다.
적당한 크기의 수첩을 준비해서 그동안 맛있게 먹었던 엄마의 음식을 1번부터 나열하기 시작했다. 국 종류, 찌개 종류, 무침 종류 그리고 탕이나 마른 반찬 등 종류별로 써놓고 보니 꽤 많은 음식의 종류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음식 할 때마다 직접 옆에서 보면서 순서와 들어가는 양 그리고 양념들을 적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그대로 옮겨 적기 시작했다.
내가 이해하기 쉽고 알기 쉽게 말이다.
그렇게 하나씩 모아서 쓰기 시작한 메뉴가 총 50여 가지 되는 것 같다.
그때의 노트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 주방서랍에 놓여 있다.
누구에게 보이거나 가르쳐주기 위한 메모가 아니었다.
오직 나를 위한 것,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 내가 알고자 하는 것들을 글로 써놓은 것이었다. 아마도 누군가 나에게 요리책을 한번 만들어 보라고 했으면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위해 하나씩 쓰다 보니 어느새 요리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라고 하면 막상 어렵게 느껴지지만 하루를 시작하면서 누군가에게 보내는 카카오톡 메신저나 받은 문자 메시지를 보며 답장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장문의 글이 만들어질 때가 있다.
『노인과 바다』의 저자로 잘 알려진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20대 때 프랑스 파리에서 기자로 활동을 했다.
그때 소설 습작을 시작했는데, 글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걱정하지 마. 넌 지금까지도 잘 써 왔으니 앞으로도 잘 쓸 거야. 일단 정직한 문장 하나를 쓰면 돼. 네가 아는 가장 정직한 문장을 써봐. 그러면 거기서부터 글을 써 나갈 수 있을 거야. 그것은 어렵지 않아.”
그렇다. 자기가 잘 아는 것에 대해 정직하게 쓰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때 정직한 태도는 겪지 않아 모르는 것을 배제하고 오로지 자기가 겪어서 잘 아는 것을 쓴다는 뜻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오직 나의 이야기, 나의 삶을 쓰는 것이 글쓰기이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말한 ‘세 종류의 글쓰기’가 있다.
생각 없이 쓰는 글, 생각하면서 쓰는 글 그리고 충분히 생각한 뒤 쓰는 글이다.
가장 좋은 글은 물론 충분한 사색 후 쓰는 글일 것이다.
이왕 쓰는 것이라면 좋은 문장을 많이 써보길 바란다.
글을 쓸 때의 감정이 우울하거나 슬프다면 당연히 글은 슬프게 나온다.
희망적일 수가 없다. 그러나 쓰다 보면 내 안에 있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서서히 빠져나온다.
우리가 말을 배우기 전 수십 번을 보고 듣고 말하듯이 삼박자가 잘 어우러지면 쓰는 것 또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하고 있지 않은가? 이메일, 블로그, 인스타 등 SNS를 통해 많은 사람과 글쓰기로 소통하고 있는 자신을 확인해보라.
정말 놀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많은 글을 쓰고 있었는지 말이다.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작가는 글쓰기가 힘들어질 때 자기최면을 걸라고 했다. 글쓰기는 누구나 어려운 것이면서도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글에 욕심을 내기 때문에 못 쓰는 것이라며, 잘 쓰려고 하지 말고 멋 부리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진짜 나를 꺼낼 생각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써지는 순간이 온다고 말한다.
점적천석(點滴穿石)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낙숫물이 돌을 뚫는다. 하찮은 것이라도 모이고 쌓이면 뜻밖에 큰 것이 된다’라는 뜻이다.
끊임없이 계속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비유인데,
수적천석(水滴穿石)라는 비슷한 한자성어도 있다. ‘작은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결국엔 돌에 구멍을 뚫는다’라는 뜻이다.
작은 노력이라도 끊임없이 계속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무엇을 하든 노력이 필요하다. 글쓰기 또한 그렇게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면 된다.
나는 오랜 시간 글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항상 쓰던 글을 막상 제대로 쓰려니 처음엔 겁도 나고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되었다.
그런데 지난날을 회상하며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다 보니 내 삶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왔다.
글쓰기는 결국 나를 쓰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나의 삶, 나의 감정을 쓰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작가의 기질을 타고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이름 석 자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인생노트가 펼쳐지니 말이다.
갓난아이가 엄마를 수십 번 부르다 엄마를 말하는 것과 같이 쓰는 것도 같은 글자를 수십 번씩 쓰면서 글자를 알아간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단어 하나, 감정 하나, 눈물 하나 떨어뜨리며 꺼내던 글들이 이제 나의 생각을 말하고 나의 인생을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보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그 누구도 나를 해체할 수 없지만 글쓰기를 통해 나를 해체할 수가 있고 더 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글을 쓰는 삶은 그 어떤 삶보다 진지해질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만으로 공중에 띄우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보이도록 써놓기 때문이다.
쓰여 있는 글은 우리의 뇌를 더 움직이게 하고 자극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더 강력한 에너지가 발산된다.
당신의 에너지를 이제 글쓰기에 쏟아내라.
자기 생각을 말하듯이 쓰고 자기다운 글쓰기로 자신을 해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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