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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붙이다와 부치다
20 붙이다와 부치다
비교과통합센터2012-02-01

 

사랑해요 한글 02
 
붙이다와 부치다
 
 
 

  통학버스를 타고 다니기 시작한 이후, 오랜 올빼미 생활을 접고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아직 건강해 보인다는 이야기는 못 듣는다.) 지난 주말에는 아예 눕고 말았다. 새로운 일상에 몸이 적응하는 탓이리라. 매일 아침 7시면 버스 도착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선다. 내가 타는 곳은 두 번째 정류소인데 늦게 승차할 경우 좌석에 못 앉는다. 그래서 버스가 도착할 무렵이면 탑승 대기자 사이에서 약간의 긴장감이 흐른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하면 누가 먼저랄 것이 없이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간다. 줄을 서지 않는 탓이다. (나도 뛰어가고 싶은 마음을 지그시 참는다.) 매일 아침 나는 경쟁사회의 한 단면을 체험한다. 마치 자리에 앉지 못하면 취직시험에 붙지 못할 것처럼 아이들은 적극적이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지 않는 내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건(?)이 아직까지 없는 것은 다행한 일.
 
‘지그시’는 은근히 힘을 주는 모양을 가리키는 부사로 ‘눈을 지그시 감다’와 같이 쓰인다. 꾹 참고 견디는 모양을 가리킬 때도 ‘아픔을 지그시 견디다.’로 쓴다. 반면 ‘지긋이’는 ‘지긋하다’인 형용사에 접미사 ~이가 덧붙어서 만들어진 말로 연세가 지긋하신 어른과 같이 나이가 많아 보이는 모양을 가리킨다. 요즘 예능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서바이벌은 누군가 탈락자가 되어야 한다. 버스자리 앉기 경쟁을 숙명처럼 치르는 통학생들에게 지면을 빌려 연대의 희망을 들려주고 싶다.
 

어느새 교정에 목련이 피었다. 꽃소식과 함께 오는 불청객 황사가 올해는 반갑다. 일본 원전사고의 방사능에 대한 우려 탓이다. 봄 햇살만 받아도 흔들리는 마음처럼 혼동되는 단어가 ‘붙이다’와 ‘부치다’이다. 이 둘은 발음도 같아서 혼동되는 동사다. ‘붙이다’는 ‘붙다’에서 온 말로 맞닿아 떨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우표를 붙이고, 흥정을 붙이고, 조건을 붙일 때 쓴다. ‘부치다’는 일정한 수단이나 방법을 써서 다른 곳에 물건 혹은 문제를 보내거나 넘길 때 많이 쓴다. 편지나 물건을 (보내고), 다른 곳에 기회를 (넘기고), 심정을 (의탁할) 때 ‘부치다’를 쓸 수 있다. 또한 부채를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는 행위와 논밭을 빌리는 것 모두 ‘부치다’가 쓰이는데 전을 부쳐 먹는 것도 ‘부치다’의 다양한 용례 중 하나다. 흥미로운 것은 ‘기대나 희망을 걸다’는 '붙이다'를 쓰는 반면 ‘비밀’에는 ‘부치다’를 쓴다는 것이다.
 
봄이다. 4월이다. 아침마다 서바이벌 통학버스를 타는 어린 친구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시 한 구절을 봄 편지로 부친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박태건 (글쓰기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