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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추천 : 유기 – 류휘석 시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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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과통합센터2019-10-22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유기 빈 가방을 들고 돌아온 너와 술을 마셨다 자꾸 아픈 얘기를 해서 얼마나 벌고 얼마나 힘들고 그런 걸 말하게 돼서 시가 세상에서 제일 짧은 병명이 돼 버려서 자리를 옮길까? 우리는 계단 중간쯤에서 두고 온 신분증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오는 데 정말 오래 걸렸지 힘들기도 많이 힘들었다 그렇지만 계단 끝에는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음을 빼앗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정류장에 앉아 횡단보도를 바라보았다 죽지 않을 만큼만 다음을 생각하는 우리가 멀리서 도착하고 있었다 있잖아 나 이제는 누가 죽어야 쓸 수 있을 것 같아 너는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를 발로 차며 말했다 잔잔하게 누워 흐르던 우리는 순식간에 공중으로 터져나갔다 아무런 마음도 없는 곳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우리는 이게 우리들의 문제다 화가 난 채로 시작하고 착해져서 돌아오는 얼굴이 우리는 의자에 흐른 얼굴을 주섬주섬 모아 주머니에 넣었다 보고 싶어 그런 말을 하고 목이 마른 채로 잠에 들었다 시작노트 세상에는 단 하나도 같은 사람이 없는데 왜 이야기는 모두 비슷할까. 지구를 밟고 마주 선 너와 나는 왜 이름을 두고 자꾸 우리라고 부르는 걸까. 지구가 기울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그러나 우리라는 것은 아무리 조심해도 넘어지기 마련이다. 포개진 우리의 바깥에 너무 많은 여백이 남을 걸 알면서. 그게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걸 알면서. 나도. 나도. 손을 들면서. 다 같이 넘어지고. 다 같이 일어서고. 까진 무릎을 서로 가려주면서. 그러니까, 그래서, 약력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6278029&memberNo=28675830&vType=VERTIC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