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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도 규칙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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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과통합센터2020-10-05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말하는 힘이 센 사람이 있는 반면 듣는 힘이 센 사람도 있다. 말하는 힘이 센 사람들은 주위를 살펴가며 자신의 말로 분위기를 휘어잡으려고 한다. 그들은 누구의 말도 존중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말할 기회를 박탈해 간다. 그것도 습관이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과 언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따위는 관심도 없고 자신의 행위 자체를 깨닫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소모임이 있었다. 매주 두어 시간을 운영한다. 처음엔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나도 그 모임에 몇 번 참석한 적이 있었다. 유독 한 사람이 눈에 띄게 말을 많이 했다. 모임을 리드하는 사람이 오프닝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그 사람은 말 중간중간에 끼어들어 상대의 말 흐름을 반복적으로 끊어대었다. 정작 말을 주도해야 할 사람은 입을 다물었고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그렇게 첫 번째 모임이 끝나고 몇 주가 지나 다시 한 번 그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날도 첫날과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처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모임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분위기가 불쾌감을 주기까지 했다. 그래도 좋은 취지의 모임이기에 나는 어떠한 불평이나 비난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또 여러 달이 지나고 세 번째로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날은 모임장소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참석한 사람은 리더와 문제의 그 사람, 그리고 내가 전부였다. 그날도 여전히 그 사람은 두어 시간 동안 자신의 말을 하느라 정작 듣고자 했던 유익한 학습과 정보는 들을 수가 없었다. 그 시간이 지난 후 모임의 리더와 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 모임에 다시는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즐겁고 행복하고 유익이 되어야 할 자리가 불쾌하고, 짜증나는 자리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내가 그곳에서 이유 없이 시간을 투자하고 에너지를 투자하면서 유익은커녕 부정적인 기운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임장은 맡은 임무를 다하기까지 모임을 해체할 순 없어 그냥 지속하고 있지만 모임에서 탈퇴하겠다는 나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십여 명 되는 사람들 모두 나와 같은 이유로 탈퇴했던 것이다. 말이 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줄 모른다. 그들은 말의 주도권을 쥐려 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 한다. 말을 주도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심리적 서열을 높이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습관이자 착각이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은 상대가 표현하는 말의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상대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또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의 입장에서 그와 호흡을 맞춰가며 공감하며 수용한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비평하기도 하며 때로는 조언과 칭찬, 위로 등을 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습관적인 행위이다. 사람의 본능 중에 교정반사라는 것이 있다. 당신은 어떠한가. 상대의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 문제점들을 고쳐주고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적이 없는가. 그러나 그러한 교정반사가 강하게 작용할수록 상대는 저항하게 된다. 나는 옳다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정반사작용은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또한 모순이다.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내 생각이 무조건 옳음이 아님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대화는 일방적일 수 없다. 특히 듣는 입장에서는 말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미덕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말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끊어버리거나 자신의 의견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자신의 입장을 세울 일도 아니다. 2. 화를 가라앉히는 지혜의 말 이 세상에 아무런 관계없이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태초부터 그렇게 관계 속에서 살아왔으며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특히 가까운 가족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아주 가까운 지인들과 더불어 관계를 이룰 때 우리는 기쁨과 슬픔, 아픔과 고통, 기대와 희망을 함께 나누게 된다. 그러나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서로 자신의 생각이나 입장을 주장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심한 말을 하기도 하며, 분노의 감정을 갖게도 된다. 한번 다친 마음의 상처를 치유는커녕 그대로 악화된 감정을 끌어안고 서로에게 당장에라도 다친 상처를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을 키운다. 그럴 때 가까운 사람 중에 상황을 지혜롭게 풀어줄 한 사람만 있어도 관계는 악화되지 않는다.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화가 들어 있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예기치 않은 불화를 미연에 방지해 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면 참 다행일 것이다. ‘미국의 18대 대통령 링컨’이 그의 부하직원의 분노를 잠재웠던 일화가 있다. 자신을 능멸하고 멸시한 부하직원에게 분을 품은 장관을 다독여 오히려 불의를 행한 부하직원을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말 한마디는 이러했다. “자네가 그에게 분을 내고 경고하는 것을 잠시 접어둔다면 그는 자네의 인격을 위대하게 평가하고 다시는 그런 경솔한 언행은 하지 않을 걸세.” 그 일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처리되었다면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아주 훌륭하고 유능한 아까운 인재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의 한 템포 쉬어가라고 권면한 처신은 화가 나 있던 장관의 위신을 세워 주었다. 또한 경솔히 행한 부하직원을 부끄럽게 했으며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훌륭한 인재를 잃는 어리석음을 면케 한 일이기도 했다. 모든 화는 대개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많이 발생한다. 그것은 가까운 만큼 나를 더 이해해 주고 내 편에서 나를 지지하고 옹호해줄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 믿음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화가 올라와 분노라는 형태를 띠게 된다. 성경 속 잠언에서는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분노에는 폭발하는 성향이 들어 있다. 서로 이해와 수용하는 마음이 없이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설령 가라앉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단면일 뿐 화는 그리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한 사람의 현명한 말 한마디가 불화로 악화될 뻔한 화를 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링컨의 지혜로운 말 한마디처럼 말이다.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1470822&memberNo=29566044&vType=VERTIC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