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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맥락의 힘
43. 맥락의 힘
비교과통합센터2012-11-30

 

 

▲ 발견과 정당화의 맥락

필자가 쓰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도 주저하는 이유는 표현력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메모하기와 주제 찾기를 ‘요리과정’으로 비유하면 ‘장 보기’와 ‘재료 다듬기’다. 능숙한 글쓰기 요리사는 적당한 도구를 선택해 삶고, 볶는 일련의 과정을 실행할 때 감정의 불의 세기를 조절하고, 다양한 도구를 다루며 재료의 원래 맛을 살려 조리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많이 먹고(多讀), 실습하며(多作), 고민해야(多商量)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요리사는 특유의 감을 잡는다. 글쓰기에도 감(感)이 있는데 맥락이라고 한다. 맥락은 재료(언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채소는 신선도를 잘 유지하게 하거나, 육류는 비린내를 먼저 잡아야 한다는 등의 이해다. 하버마스는 합리적 의사소통이 맥락에 좌우되며 이는 ‘대화’를 통해 가능하다고 했다.

‘문 닫고 들어오세요.’는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처럼 사회 통념상 발생할 수 있는 오해의 소지는 ‘대화’의 전, 후 관계의 이해로 해소할 수 있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 가신다.’(우리나라 사람은 대충 알아듣는다.)라는 문장의 띄어쓰기도 외국인을 괴롭히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무엇을 위해 그것(말, 행위)을 했는가?’라는 맥락을 이해하면 오해가 풀린다. 즉 어떤 말 혹은 행위의 ‘결과’ 보다 ‘태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대 사회에서 의사소통은 맥락(context) 표현법이 중요하다. 맥락은 여우를 초대하여 긴 호리병에 음식을 내준 두루미처럼 상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우리는 잔치 날 굶은 여우가 어떤 복수를 했는지 알고 있다.)

맥락 이해의 또 하나의 중요성은 가정으로부터 성립될 수 있는 여러 가지 결론을 추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글이 완성 된 후에 자신의 추측이 옳은지 틀린 지를 확인하는 검증(재발견)이 가능하다. 무목적적인 가정과 결론 속에는 감정적인 표현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맥락은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되는 것이다.

▲ 맥락을 이해하면 의사소통이 쉬워진다.

문맥은 문장의 맥락이다. 말하기와 달리 글쓰기는 정확한 어휘 사용이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요리사는 재료 다듬기부터 배운다. 요리(글쓰기)의 시작이 재료(어휘)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재료의 특성에 따라 다루는 법이 달라지듯 비슷해 보이는 어휘의 쓰임도 다르다. 그러나 입말에 길들여진 경우 헷갈리는 원인이 된다. 자주 혼동되는 어휘중 ‘귀지/귓밥’이 있다. 귓밥은 ‘귓바퀴 아래쪽에 붙어 있는 살’이다. 다른 말로 ‘귓불’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귀지를 귓밥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있다. 웬만한 것 뒤에 ‘~밥’을 붙여 쓰는 습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건전지 바꿔라”를 “시계밥 줘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마도 물활론적 세계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충 듣는다. 그러나 글쓰기에선 어림없다.

 

▲ 문맥에 맞는 어휘를 고르자

선거가 끝났다.(아직 한 번의 기회는 남았다) 학내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밤새우며(‘밤새다’가 아닌 ‘밤을 새우다’가 맞는 말) 속을 썩이고(음식이나 재능은 ‘썩히다’, 속과 골머리는 ‘썩이다’)있다. 하버마스가 말한 실질적 합리성에 근거한 판단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장차 과실이 될 지는 전화위복이 될지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돈을 내주다’, ‘겪다’는 ‘치르다’이다. 과거형도 ‘치뤘다’가 아니라 ‘치렀다’임)한다는 걸 안다. 십자가에 예수를 매달았던 유대인들이 그랬듯이, 다수당의 횡포를 견뎌야 했던 지난 4년이 그러했듯이, 반백년 우리 학교의 역사에 또 다른 백년 후를 상상해야 한다.

 

 

박태건(글쓰기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