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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아름다움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42. 아름다움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비교과통합센터2012-11-30

 

 

글쓰기의 시작은 ‘왜 글을 쓰는가’라는 문제의식이다. 문제의식은 글의 시작이자 이끌고 나갈 동력이 된다. 이걸 놓치면 글은 나갈 방향(길)을 잃게 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받아들이는 문장에는 글쓴이의 프레임이 작동되고 있다. 프레임이란 세상을 보는 관점이다. 우리는 타인의 언어를 옮겨 쓰면서 (누군가의 관점에) 무의식적으로 포섭되는 것이다. 이제 세상의 모든 문장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학교가 ( )문제로 소란하다.’라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의 괄호에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넣으면 학교가 주도하는 개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반면 ‘폐과’라는 말을 넣으면 폐과를 실행하려는 주체가 학교라는 사실이 강조된다. 전자는 학교라는 주어가 강조된 반면 후자는 소란스럽게 된 상황을 부각시킨다. 단어 선택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것이다. 단어(핵심어)를 선택하는 데는 각자의 프레임이 작용한다. 프레임은 먼저 사용하는 사람의 각인 효과가 있어서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문제해결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 ‘학교가 ( )문제로 소란하다.’의 프레임은 어떨까? ‘소란하다’는 형용사로 추측해 보면 글쓴이의 입장은 학교의 문제에 한 발 비껴서 있다. 이제 서술어를 ‘시끄럽다’로 바꿔보자. 어떤 느낌이 나는가? 현재의 소요가 잠잠해지기를 바라는 글쓴이의 입장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처럼 언어에는 사용자의 관점이 (무)의식적으로 투사된다.

 

‘무엇을 쓰려고 하는가’는 글이 추구하는 목표다. 일상의 모든 것이 글이 되기 위해선 ‘무엇’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 주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왜’라는 문제의식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되어 관계를 지향한다. 관심→관찰→관계로 이어지는 과정을 글쓰기의 3관이라 부른다. 관찰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고 관계는 주체와 대상의 미래를 지향한다. 즉 ‘무엇’에 대한 문제적 관점이 ‘어떻게’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고대의 플라톤부터 현대의 A.N.화이트헤드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철학자들은 곧 최고의 수학자였다. 그들은 진리와 선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믿음으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순수한 답을 추구했다. 수학 시간에 무조건 외워야 했던 ‘피타고라스의 공식’ 역시 ‘무엇’을 해결하고픈 철학적 고민(‘어떻게’)인 셈이다. 그렇다면 최근 내가 본 것은 세상의 ‘무엇’에 대한 무관심일까? 철학부재의 결과일까?

 

‘어떻게 쓸 것인가’는 글을 구성하는 문제다. 관점이 다르면 ‘어떻게’도 다를 수밖에 없다. 글쓰기의 타입 중 가장 안 좋은 방법이 양비론이다. 양쪽의 문제를 동시에 비판하고 본인은 중립적이고 객관적 이성의 소유자인양 숨어 버린다. 이런 글은 슬그머니 타협이 만사형통임을 내세우며 끝맺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교육부의 평가에 대한 해결 방식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다. 현실에서의 ‘어떻게’는 감정이 앞서게 되기 마련이다. 글 쓰는 이가 빠지는 가장 큰 위험이 ‘어떻게’가 감정적으로 흐를 때다. 감정의 기운을 잘 조절하여 글의 활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노자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강렬함이 생생불식(生生不息)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고 했다. 서론-본론-결론으로 이어지는 구성의 틀을 넘어 기운생동한 논리로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과 공감을 얻자.

글쓰기의 3단계(관심·관찰·관계)는 ‘왜, 무엇을, 어떻게’의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제 일상에 관심을 갖고, 쓰고 싶은 주제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좁혀서 글을 써보자. 기존의 연구결과를 참조하면 대상과 거리가 확보되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왜’라는 문제의식을 마무리까지 지속시키는 것이다.

 

물음표(?)는 세상에 대한 흥미(관심)이며 느낌표(!)는 세상과의 소통(관계)의 표시다. 세심한 관찰로 ‘무엇’을 쓸 것인지를 생각하자. 그리고 ‘어떻게’를 통해 기존의 것을 모방하며 자신에 맞는 방법을 찾자. 세상의 모든 문제는 답을 갖고 있다. 답은 곧 글쓴이의 주제의식이다. 학교 문제에 대해 내가 쓴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봄날 오후, 나는 혼자 캠퍼스를 걸었다. 길은 깨끗이 쓸려 있었다. 빗자루가 지나간 자국은 고요하다. 봄 햇살이 먼지처럼 내려앉는다. 햇살 아래 난 길을 다 못 걷고, 나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에는 대가가 필요하다고 작게 중얼거렸다.”

 

박태건(글쓰기센터 연구교수)